이번 글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이 강한 글이므로,
필자만 하는 실험에대한 글은 필자의 특별한 시각을 주로 적어두는 게시판에 적는게 부합한다 생각한다.



필자는 이공계 생물이라고 누차 밝혔다. 이공계답게 엉뚱하며, 실험 챠암 좋아라한다.
실험을 장르 막론하고 마구잡이로 하곤 하는데, 더러 질문 받는다, 사람도 실험하느냐고. 어브 콜~스!
그걸 말이라고 하누. 
그러나 엄한 남을 위험하게 만들 순 없기에, 부단히 자신을 가지고 한계치를 실험하기도
한다. 알고싶거든. 그런데 이건 
찾아도 안 나오는걸 어떡하라고. 궁금은 한데, 찾아도 없다? 해 봐야지 뭐, 다만
위험하지 않을 선에서 실험을 하자 그거지.

해서 그 순간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는 필자 자신도 예측을 할 수가 없는거다만, 그래서 더 재미가 있었다.
어떤 진실의 탐구? 인터넷을 뒤져도 안 나오고, 대단한 석박사급 의사들 찾아가 물어도 안 나올걸 스스로
알아낸다? 
짜릿하달까, 이것도 중독이 되면 답이 없고, 들려오는건 '너 잘났다 괴짜야.'가 다반사겠으나 여하간
남들은 절대 모르는걸 
혼자서 알아냈다는게 그렇게나 쾌감이 클 수가 없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상식이 되기도 하고, 기존의 상식들에 맞물려져서 그것을 보다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기도
한다는거. 
다만 가학적이느니 별의 별 소리는 어차피 듣는거다만, 그런거에는 적당히 귀 막고서 모른체 해 버리고
소신껏 한다. 
어차피 사람은 지식을 끝 없이 갈구하고, 필자의 경우도 물질 탐하는 욕구나 식욕, 그리고 동물적
본능에 대해서는
노 관심이고 도리어 싫어하는 축에 들어간다. 동물과 사람의 공통적인 성욕에 관심 가져보이
재미가 별로 없기도 했고 
사람이 동물보다 뭐가 우월해서 만물의 영장인가 하는 명제에 답이 안 될 것들이라
관심이 안 가더라. 그래서 그런걸
유난맞게 병적으로 들이대던 사귀었던 남자들이 개피곤했다. 왜 저렇게 사나
싶었고, 안 맞으니까 각자 간거다만 여전히 
관심이 전혀 안 간다. 사람은 가자 다른거라 필자에게는 사람의
학명처럼, 보다 생각 본위인 것만을 추구하니까.

 



 

이 실험의 계기는 언제 어떻게 스스로에게 박혀버렸는가? 필자가 6학년 때는 '일본놈들' 하면서 무조건 미웠다.
교육이 그러던 시기니까 부들부들 뭐 그럴만한 소녀였거든. 반공 방첩 그런 교육부터 일본은 고약했다고 배운
세대다. 
커 보니, 그 몇이 어느 나라던 문제지, 모든 일본인이 나쁜게 아니었고, 배울 점이 도리어 많다는 시각을
텄다마는 
암튼 그 때는 작은 하나라도 지기가 싫을만큼 이유없이 미울 나이였다.


하루는 담임이 한 가지를 그냥 쓱 이야기를 하더라. 그게 꽂힌거다. 일본 사람들은 정신력이 참 강인하다면서
그렇게나 
독하니까, 그 중에 고얀 사람들도 나와서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괴롭힌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시더니 그 끝에 
예시 하나를 들려주셨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보통 전원 사망이 되는 큰 사고로 이어지고, 파편도
무수하고 광범위하게 
사방에 흩뿌려지지만 불 나고 폭발하고 해서 누가 누군지를 유해 찾기가 쉽지가 않다고
하시면서 왈, 그 와중에도 
일본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가족에게 알릴 수 있게 정신 똑바로 차린다는거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식이 일본인이라나. 추락하는 비행기 속이면 좀 무섭겠나. 가속도도
그렇고, 죽기 싫다고 아비규환인게 당연지사.

허나 침착하게 자신의 명함을 하나 꺼내서 거기에 빼곡하게 식구 모두에게 한 마디씩 해 주는 유언을 촘촘히
적어대고 
그걸 지갑 속에 넣고, 지갑을 가지 안주머니부터 몸 제일 깊은 속에 많이 싸서 넣는단다. 어차피 죽을거는
담담히 받아
들이되, 유언이라도 유품이라도 가족에게 도달하게 하자는 사명만을 남기면서 그걸 보호하듯 다 감싸고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유언이 적힌 유품이 나오는건 언제나 일본인들꺼이 많다나. 얄밉도록 정신 승리면
에서는 독보적이긴 했다. 
반 아이들 모두 필자와 더불어 충격에 휩싸인 이야기였다. 와... 독하다만 참 침착하고
치밀하고, 그래서 중요한거 남기긴 
하는구나 하고 그 다른 부분, 중요한걸 남길 수 있는 그런 모든게... 왜 우리
한국인이 더 우월한데 못 그러는가가 
들으면서도 존경스런 면도 있지만 어쨌던 일본인이라서 이유없이 또
분한거다. 해서 위기가 오더라도 정신만 잘 차리면 
우리가 더 우월하다는거 증명만 하면... 어린 맘에 일본
사람들을 이길 수 있을거 같았다. 일본이 그런 정신력이 탑재되서 
한국보다도 더 잘 사는거 아니냐고 하는
이야기엔 반박을 달 근거가 없어서 더 분했다.


 



이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살아간거다. 나도 언젠가는 그 순간에 반드시 정신 똑바로 차린다.... 이런 생각.
기회들이 올 때마다 매번 가능할까를 순간 생각해 내기조차 사실은 안 쉬웠지만, 해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꽤. 
크고 작은 여러 경우에서도 이런걸 실험하듯 했었고, 매번 해낸 성취감에 고양되던가 하면서,
일본인이건 유대인이건 
제일 우월한건 우리 한국인이다 하며 씽긋 웃으며 훈훈한 마무리를 한다던가
이렇게 흘렀다.

 

 

어른이 된 지금, 그것이 한 사람의 멘탈을 참 견고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어쩌다가 되긴 했지만, 큰 성장도
가져온건 
부인할 수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전화위복은 하늘이 주시는게 아니라, 말하자면 스스로 돕는
자에게 하늘이 
내려주시는 기회라는걸, 그 모든 격언이나 속담 속의 진리들이 퍼즐이 맞으면서, 이 끝나지
않은 실험은 앞으로도 
이어갈 이유가 충분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 필자는 스스로가 괴팍한
괴짜인거 인정한다. 맞는 소리다. 
조금이라도 비슷하거나 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으니 말이다. 그래서 의지
박약한 사람을 아주 경멸하거나 하는데 
노력조차 안 해 보고 그냥 닫은거 같아서 갑갑하더라. 특히 남자가
징징대면 껄껄껄 웃으며 뻥 차버리고 싶어진다. 
수컷이라는 본능 치중할 정신력 여따가만 쏟아도 니가
사람이 될거 아니냐며 아주 매몰차게 쎈 말을 뱉곤 한달까.



그래서 이전에 어느 머저리 하나 왈,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느니 이러더라.
늘 걔는 그랬고 
발전도 없고, 무슨 등산을 한답시고 나대더니, 에베레스트 다녀왔으니 우러러 봐달라는듯
나왔는데, 정작 그 산은 
넘더라도, 한 명의 여자를 그 산을 넘듯이는 못했다는건 자기도 인정하기에, 사람도
극복 못하는 놈이 뭔 핑계가 많냐 
일축을 시켰다. 현재 그 놈은 김해 태산 산악회 산악대장이라고 나대기는
하는데, 등산하며 산의 정기를 받자는게 아닌, 
거기서 여자 헌팅하고 혼인빙자 간음처럼 나가서 송사가
걸려있다고 알고 있다. 인간이 그렇게도 망가지고 변하더라.



다 좋은데 왜 나한테 그런 전화들이나 연락이 아직까지 오는지, 잡아다가 확 조져버리고 싶은 적도 참 많다.
중년 아주머니 산악인들, 태산 산악회 산악대장 조심해라. 몸 버리고 돈 잃고 후회할거다 병도 얻고.
미안하지만 증거도 증인도 무지하게 있으니, 나중에 대면하자해도 그런건 겁 안 난다. 겁나서 피하는건 되레
그 놈이라. 
그리고 이 블로그는 필자 개인의 공간이니, 개인 사찰하는거 아니고선 증거가 엄청난걸 명예 훼손
거론마라. 
건드리면 그 증거, 전부 모두 다 뿌려버릴지 모른다는거. 왜 그 뒤치닥거리처럼 필자에게 그럼
피해줬냐. 안 그래? 
김해의 태산 산악회 산악대장이 현재 자기 집이 있는지, 직장이나 이런게 온전한지,
대조해 보던가. 
참고로 현재도 여전히 그러고 있고... '3계동', 뒷번호 4774.... 번번한 얼굴에 중년의 등산
사랑하는 여자들 속지마라. 
솔직히 김해 태산 산악회가 제대로 산을 즐기자는 건전하고 올바로 된
산악회라면, 이런 사람을 내세우지 마라. 
산만 잘 타면.... 범죄 저질러도 그냥 무마되는건 산악회의 근본
취지랑도 안 맞고, 여성 회원들에게만 미루지말고 
사실 여부를 다 확인하고 내세우던 해야지, 에베레스트만
갔다오면 그냥 성범죄 상습에 성도착증자가 간부? 웃긴다. 
요즘은 개나 소나 그런 식인데, 그런 사람이 산신께
무슨 제사를. 예끼 이 사람들아. 산신님은 가만 계시니? 김해 태산 산악회 회칙  7조에 품위 유지도 있던데...
그게 품위인지 한 번 거기 회장 이하 간부들에게 묻고싶네. 
안전하게 산행하자고 산악대장을 단체에서 꼽은거면,
그 놈이 거기서 그거 달고 안전과 맞게 굴었는지 자격 검증 해. 
거기에 들어가는 로고를 만들어준 사람이
필자였기에, 잘 알 수 밖에 없고, 그런 사람인거 알았음 안 만들었다. 
정말로 치받치면 모르지, 필자는 산악회에
관심없는 심장 안 좋은 사람이지만, 김해 태산 산악회에 실체를 뿌릴지도. 
여자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존심 버리고
모아서, 산을 가잡시고 군 후에, 목적은 여자 유린하며 몸 섞기... 추했다. 
그 몰락이 너무 병신같았다. 그거는
산악인도 아니고, 있어보이지도 않고, 하기사 직업도 집도 정확한게 늘 없다. 
그런 애들의 특징은 일단 환심을
연민으로 살 것, 어디서 멋진척 하는 말을 들어올 것, 술 마시고 개진상 되기 등등 
뻔한게 대체로 법칙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이 되어있더라. 남에게 베풀줄 모르고 진실도 없고, 남의 노력만을 그냥 
거저 받아가려고 하는
이유도, 산 넘듯 자신을 극복하지를 못한거라서. 그래서 스스로가 생각해서 정리하는게 안 되고 
대부분 누가
그렇다더라 인용만 있지, 거기에 제 생각을 녹이지도 못한다. 결국 선택을 뭘 어찌 해야하는가는
자신이 자기
미래를 정하는거고 인격을 만들어가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허세만 있는 사람은 실체가 없으니 
만사 정직할
수도 없고, 그래서 자격지심이 다른 위험한걸로 터지게 되는게 아니냐 라고 본다.

 

 

결국은 심리학이다. 꼭 심리학 개론을 박박 외우고 공부해야만 아는게 아니라, 나이가 농익어가면 자연히
터득하는게 사람을 대하고 알게 되는 그런 심리에 관한거다. 경험이 나이에 스미면 안 보이던게 다시 보이고
그래서 나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퇴보하는 사람도 있으니... 저렇게 사는거보다는 그래도 스스로 실험할지라도
최소 타인이나 세상에는 폐가 안 되고 본인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쪽이 낫다는건 느끼고 있다. 가짜가
되기보다는 진짜가 되는건, 결국 노력 안 하고는 방법이 없다. 필자의 이런 실험 역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하고싶다. 혹자는 궤변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누구에게 피해 주는게 아니라면 자기 만족 아닌가.

 



 

 

과학적인 부분의 실험을 예로 들겠다. 순간적이라도 사람의 의지가 발동하면 통증이나 기타 체세포와
근골 조직에 가는 영향의 상관도가 알고싶은거다. 우리가 아프면 진저리를 내면서 모든걸 쥐어짜내며 참는다.
이게 소용이 있을까? 소용이 있다면 얼마나 있을까를 구체적으로 알고싶어졌다 너무나도.

 

 

하루는 모퉁이 돌다가 새끼 발가락님이 따라오질 못하고 쫘악~ 벌어지며 쿵 했다. 벽 모퉁이 돌다가 찧기.
많이들 겪는 고통이고 눈물 콧물에 너무 아픈거, 말해 뭐하랴. 누구나 말만 해도 찌릿대던 생각하면서
부들부들 떨면서 거론도 말라는게 그 고통인거다. 한 번 이상은 죄다 경험들 했으리라 본다 애나 어른이나.

그 때에 통증을 꾹 참고 아니고... 실험했다. 의지가 미치는 영향도를 파악하려고. 생각난게 고맙고 다행이었다.

꾹 참았을 때는 아주 쎄게 부딪혔는데도 불구하고, 겉만 긁힌듯 별 이상이 없었다. 좀 얼얼하고 아팠고
그래도 멍들다 마는 척을 하고 금새 나았다. 잘 참기에 따라 발가락 뼈가 또깍 부러지지 않았다는거.

반대로 그 경우보단 살짝에 해당할만큼 꿍 했다. 난 못 참겠다, 아파 죽겠다 죽겠다, 살이 터질거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고통스럽다고 하고, 아픈걸 안 참고 뒀다. 이게 더 힘들었다마는 통증 안 참을 수 없다는거
그걸 알았다, 사람의 본능을 이기고 실험한다는게 이래서 무모하다고 하는거구나 했다. 결론? 그 정도인데
겉이 푹 패이고 살이 베인게 아니라 고기처럼 불규칙적으로 찢어져 파열이 되고 과다 출혈이 일어났고
뼈는 금 갔던건지 어쩐건지 이게 몇 달을 가더라.

 

 

무모하지? 그런데 실험으로 알아낸 결론, 순간 통증을 참는다는 부들부들 참는 각오가 들어가니,
견고해진달까, 경도? 강도? 뭐라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조직이 치밀하게 강도가 올라간 느낌?
충격을 견뎌내기 위해 순간이나마 촘촘해지면서 피부부터의 강도를 올려서 통증과 상해를 최소화.
그렇다, 면역이라는 것이 면역 항체만이 아니라 정신에서도 상당한게 있더라. 그런 정신적 각성에서는
어떤 호르몬이던 화학적인 물질이 뇌에서부터 분비 명령을 유발하면서 자신을 지키게 만든다는거.
즉 차력쇼 하는 사람들이 순간 자기 몸을 강화한다는거의 축소판이다. 차력쇼는 대부분이 뻥은 아니다.
굉장한 단련과 노력이 된 고수만 가능한 아주 위험한거다만, 그들은 그런걸 순간 끌어내서 최대치로
올린 채로 불을 참고 쇠꼬챙이를 참아내는 이런거였다. 정신의 초 각성 상태가 이끈 화학적 분비가
이뤄낸, 신체의 그런 강도의 변화가 몸에 오는 충격을 흡수하던 튕겨내던 견디는 부분을 키우는거다.
단지 순간 참고 아니고에 따라 결과는 너무 극명하게 갈리더라. 아... 하고 알았다. 사람이 약물만을
의존해서는 되지 않는거고, 결국은 환자는 자기 본인도 나으려는 의지가 커야만, 허나 대충 정도가 아닌
제대로 각성 상태로 올려지면 그것이 초인적이라고도 불리우는 그런 한계치의 상승이 가져오는
긍정화된 결론을 도출한다는걸 실험으로 알아냈다.

 

 

다른 경우, 어떨 때 어떤 순간에도 정신만 잘 차리면 죽거나 아프지 않는가? 필자는 제법 큰 수술 중
전신 마취가 풀리는 사태를 겪어봤다. 의료 사고는 맞다만, 화타가 왔어도 사고는 났으리라 보기에
신해철씨같은 그런 허망한 경우는 아니지만, 마취를 덜 한 것도 아니고, 특정 약물이 안 들어서도
아니고 
수술 중간에 장기 하나를 다섯 번이나 찔려서 너무 아프니까 풀리고 깬거다. 깨서 스스로
몇 번 찔리나 셌었다. 
그러나 비명 지르거나도 없고, 아파 죽겠을 고통도 참을만 했고, 그 병원의
전설로 남았다. 어, 대학 병원 맞다. 
그 이야기는 추후 다른 의학 상식 관련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한다.

 

 

 

그럼 왜 실험을 했느냐? 30대에 인간으로서 받아볼 수 있는 각종 수술은 다 섭렵했다고 적었다.
그거의 남은 잔재가 지금도 강한 약을 더러 써야한다는 렉을 남겼기에,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공부하고 알려고 하는 지적인 면의 노력도 역시 해야한다는걸 느꼈기 때문이다.
간지럼도 참으면 덜 간지러워하는 사람 있다. 허나 그들도 무방비에선 처음에 간지럼 탄다.
같은 맥락이라는거. 그럼 한 봉의 독한 약을 다시 한 번 쓴다해도 이것이 제대로 먹힐려면
의지라는게 들어갔을 때 적어도 나쁘지는 않다는거다. 어차피 쓸거면 효과라도 높이자는 취지.
실험해 보아서 알았느니만큼 이 부분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적인 면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 옛날 6학년 가을에 차에 받혀 3~4미터를 공중에 붕 떴다 떨어지는 순간에, 기억했던 그 마음.
담임이 얘기 해 줬던 그 일본인들의 정신력에 그저 지기 싫어서 정신을 차리자고 한 순간,
시간은 느리게 가듯 했고, 공중에서 낙하하면서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사람은 머리가
무겁고 
애기들이 잘 못 걷는건 머리가 크고 무거워서 그렇기에, 아직 어린이인 내 경우도 머리부터
떨어질거고 
고로 떨어지는 순간에 자세를 못 바꾸면 머리부터 터져서 즉사하겠구나를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그것이 뭔지 깨닫고 발버둥치듯 자세를 바꿔 엉덩이로 니은자처럼 고대로 떨어졌다.
허리는 좀 무리는 갔고, 허벅지는 핫팬츠라 찰과상은 있었지만, 분명히 시속 60킬로로 오던 차에
등짐같던 책가방을 받혀서 포물선 운동을 지상 3~4미터 높이까지 갔는데도 불구하고 멀쩡...
아, 목격자가 필자 부친의 카센터 단골집 청년이라 시속이나 공중 높이 등을 정확히 말했다.
대로변이라서 상인들도 많이 목격했고, 경찰이 목격담 취합시에 안게 공중을 3~4미터 날다가
포물선 운동 하고서 엉덩이로 떨어졌다는걸 확인했었던게 1985년 9월 13일 금요일이다.
부친께선 그 사고 후에 그러시더라. 서양 미신 13일의 금요일이 재수가 아주 없는 날이라는데
그 반대라서, 재수가 좋은 날이라서 막내딸이 안 죽고 살아서 무사히 온거라고 하셨다.

 

 

 

그렇다, 사람이 같은걸 놓고도 하나밖에 없다고 부정적으로 말하느냐, 아니면 반대로 하나라도
남아서 다행이고 고맙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걸 알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여기서 나오는거지 싶더라. 그러면 스스로에게 기왕 그럴거 좋아야겠지.
그것도 해 본 사람이 그 한계치도 야금냐금 상승시키면서 극복도 잘 한다는걸 알았달까.
꼭 위험하고 엄청난걸 겪어야만 깨달음이 깊으냐는 아닌데, 머리는 알지만 마음이 받아들이기 싫은
우리는 모두 그런 똥고집을 가지고 있다. 작은거에서도 눈치들 챘으면 조금 달랐지 않을까.
허나 꼭 자극적이듯 사건이 크던 아픔이 커야만 더 잘 느끼는거 같다, 아집 때문에. 물론 똑같은걸
겪더라도 안 크는 사람이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막 해대면서 분노를 푸는 김해 산악대장같은
머저리처럼도 될 수 있지만, 반대로 거기에서 나만의 교훈을 긍정적으로 찾을 수 있다면 보다 나은
그런 삶이 되리라 확신한다. 절대 그런게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다는건 해 본 자만이 아는 얘기니까.


이래서 모 종교에서는 그 맥락인건진 몰라도 항상 깨어있으라는건가보다. 좋은건 내게 유리하게

소화해서 들어버리면 그만이다. 기왕 살거, 잘 살자 똑똑하게. 그럴려고 필자는 실험한다 매순간.

 

Posted by Sess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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