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하루 단상
Sesshou's Pen/My Writings, Essay 2018. 1. 1. 13:56 |
'단상'이란 표현까진 너무 과할거같은, 대략적 끄적거림만을 적어둔다.
새해가 되기 얼마 전부터, 먹는거나 자는게 뜻대로 안 되고 있는 중이다. 골치 아파 죽겠다만 한 켠으론 풀어둔다.
첫째 얘가 잠을 안 자빠져자네. 해서 며칠이 지나간건지가 나중에는 참 모호해진다. 고3 때 진작 그랬으면
좀 좋겠냔 말이지. 스무살 넘어서 생긴 불면의 밤은 최장 보름여를 꼴라당 새우도록도 만들어봤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카페인 한 톨 없이도 하루 정도는 피식 하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새버릴 수 있달까.
아무리 봐도 지구 생명체가 아닌, 우주에서 온 놈과도 같은 습성이랄 것이다. 밤 새면 졸리고 정신없고
생각이라는게 꼬이고 눈 마구 감기고 휘청휘청... 이거이 정상인데, 이건 무슨 보다 더 각성 상태로 변해버린다.
해서 지금도 하루 꼴랑 새면 집중도가 쓸데없이 더 좋아지고, 업무 처리 능력도 2.5배가 파워 업이 되곤 한다.
아무리 과학의 테두리로 보려해도 스스로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자신의 특징이랄 것이다.
물론 필자는 카페인을 좋아하는 편이지, 거부감 이 쪽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건 반은 해롭고 반은 이롭고
일장일단이 사실은 대등하게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느 면이 더 부각되었냐로 이미징 된건지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거다 하며 그냥 놔두는 편이다. 무언가가 괴로우면 그런 리듬이 깨질거라는건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판단은 할 일인거고. 먹는거나 자는거같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본능 부분의 오류는
그만큼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고민 고뇌 이런 그림자가 클 적에 따르는 현상이다.
허면 왜 병원에 가서 상담하지 않느냐? 현재 글을 읽는 자들도 그러하고, 필자 주변도 열이면 열, 죄다
하나같이 마치 짠듯이 혹은 그 말 밖에 할 줄 모르는듯 대단한거나 말해주는양 병원 타령이다.
아니, 미안하지만 댁들보다 의학적 생물학적 상식이 썩히 밀리는 본인도 아니며, 그렇기에 노굿이라 할란다.
빈대를 잡으려다가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서구적인 약들은 식품에 들어있는
자연적인 상태로 흡수되는게 아니라, 어떤 화학적인 방식으로 추출되서 정제던 약물화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과정을 담는 것들은 오남용 할 경우 안 쓰느니만 못한 렉도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간과하며 당장만 급급해하고 당장만 그저 멍청하게 빨리빨리 이러고 있다.
마취에 대해 잠시 거론하겠다. 필자는 30대에 그야말로 인간이 받아볼 수 있는 엔간한 수술 방법을
온 몸으로 받아내 봐야만 했었다. 배도 갈라봤고... 개복수술이라 하지? 애 낳느냐고 제왕절개한건
병증으로 한거 아니니까, 개복수술이란 개념에 무식하게 제왕절개도 동일 경험이나 되듯 나도나도 하지마라.
다른거거든? 그리고... 당신은 제왕절개해서 낳은 당신 아이가, 암 덩어리냐? 그거 아니면 끼질 마. ㅎㅎㅎ
하여간에 진짜 스펙타클한 삶을 살았던 바람에, 임플란트도 박혀있고 말이다. 진짜 오만걸 접해봤다.
그럴 때 전신 마취, 국소 마취, 부분 마취 역시 종류별로 다양하게 접했는데, 말만 앞이 달라지지
마취는 마취라는거, 동일 결과 산출이라는거잖아. 수면 마취던 뭐던 전신이 마취된거면 전신 마취고.
개념 이해하지? 일단 이 개념을 머리에 탑재해야만 그 마취라는거의 위험도,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약물의 오남용의 위험도를 제대로 느낄 수가 있기에 서설이 긴거다.
그것이 몸에 어떤 데미지를 남기는지 아는가? 필자는 기억력이 사실은 아주 좋다가 아니라,
너무너무 엄청나게 좋은 편이다. 본인과 동갑내기 동창들에게는 마치 산 증인처럼 이야기를 해 준다.
'오정'이라는 단어도 알질 못한다 오십대도 육십대도 더러. 정오말고 오정이라고 오시의 정 가운데.
자시의 정 가운데라서 자정으로 부른 것에 대한 짝꿍 단어다만, 오정을 알리는 단발 사이렌,
그것을 '오정 분다' 라고 70년대 초에 표현들 했는데, 오정 부는게 뭔지를 오륙십대도 어라 하고 앉았으니
기억력의 정도가 차이가 있다는 증빙은 좀 되지 싶다. 오정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할 때 하고...
암튼, 수면이던 뭐던 전신이던 국소던, 몸엔 그것이 어느 정도 그 못된 흔적을 남기게 되는데
어떠한 일이 있었느냐면, 특정 기억이 벽돌이나 젠가 빼듯이 소거되어있다는거. 굉장히 힘들었다.
누군가가 어느 날 불쑥 나타나서 거의 울고불고 울먹거리고 어떻게 자기를 잊어버리느니 울어대는데,
난감하고 뭔가 죄 지은거 같고 미안하고 위로는 해 줘야겠는데 생각이 나야 말이다. 대학교 후배라는데
필자 본인이 그 예전에, 후배라고 자처하는 여인네가 고민 상담을 해 오면, 과의 노털답게 애들 물리고
팔자의 방에서 1:1 면담을 해서 다독여주고 풀어주고난 후에, 이제는 다 잘 될거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튼 재주껏 기분 좋게 만든 후에, 본인의 책상 서랍에서 깡통 하나 열어가지고는 사탕을 주더란다.
그걸 받아먹으면 정말 고민이 달콤해지게 변하는거 같아서 못 잊는다나. 더 환장하겠더라.
나의 활약상이라는데 나는 기억 안 나고 남 얘기처럼 듣고 그랬냐고 묻고 있는데, 상대는 내 반응 보고
자기를 잊은거냐며 서럽도록 우는데... 필자 본인도 여성이지만 더 어린 여성이 와서 눈물 콧물 다 짜고
누구라도 죽은거마냥 서러이 우는데는 진짜 난감하고 어쩌질 못하겠더라. 그저 미안할 뿐.
내가 해선 안 될 되게 못된 짓이라도 한거같은 묘한 죄책감이 들긴하는데 전혀 모르겠는거다.
해서 나중에 동기들 소집해서 물어물어 정보 수집에 당시 일들을 기억하는 애들로부터 들어본 후
이런 일들이 있어서 그렇구나를 요약해서 강제로 머리에 넣고 다시 대면했으니 말이다.
되게 애틋한지, 한 때 싸이월드에서 '선배님, 저랑 커플 일기장 해 주세요.' 라길래, 걍 해 줬다는거.
최근에서야 이렇게 저렇게 그 잃어진 시간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알았다. 그 소멸되듯한
기억의 년도가 몇 년도에서 몇 년도까지의 대부분을 싹 빼놨다 라고 결론을 냈다.
이런건 의사나 부모가 아는게 아니라, 자기 기억은 자기가 알아낼 수 밖에 없잖던가.
그래서 그 잃어진 봉인된 년도에 들어간 일 중에, 일어하고 중국어 열심히 배워놨더니
거의 다 날아가버려서 중국어는 전혀 되지가 않고, 일어는 한자 때문에 억지로는 읽어도
프리 토킹을 하던게 안 되는거고, 자격증도 땄었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더라는거, 속상하더라고.
정신과에서 주는, 우울증에 대한 약들은 안 그럴거 같은가? 몽롱...하게 마치 잠이 취해버리듯 오는거마냥
사람을 마약 먹은듯 멍한 상태로만 만들어서 감정이 예민하지않게 강제로 화학물로 누르는게 온전하겠나.
여기서 더 뭐를 소멸시키고싶지가 않아서, 필자는 그런 정신과 상담 후 약물 처방 받느니,
차라리 가만 둬서 그 시간을 활용하게 두던지를 택한거다. 지치면 때 되면 자빠져 잘테지.
왜냐, 필자 역시 사람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지치는 때도 온다는거지, 영원한건 없는거거든.
체력적으로던 뭐던 지치면 더 건드리지 않아도 언젠가는 곯아떨어지던 디비 자던 할거라는거.
조급하게 당장만 생각하고 며칠 못 자는 상태에만 급급하고싶지 않다는게 그 이유다.
그 시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사람이 자기 하기 나름이다. 필자는 인간이 만든 물질인
그 정신에도 영향 주는 화학적 합성물이라는 약물에 의존하고싶지 않다. 다른걸 되려 잃을 수 있다는
그 위험도를 이미 겪어온 사람으로서 안 하고싶은건 당연한 입장 아닌가. 해서 잠 안 오면 뭔가
공부를 하던 글을 쓰던 자신이 할 수 있는걸 하며 정신을 몰두하게 만든다, 그나마 즐기라고.
그러다가 쌓인게 그림이었더랬고, 혼자 독학하다시피 사람을 그려내고 한게 쌓이니,
그래픽 프로그램을 다루는게 능수능란해졌고, 그 그림들은 켜켜히 모였고, 나는 그것을 모았다가
어느 날, 엔지니어로서 체력적으로 좀 한계를 느끼게 되었을 때, 디자이너로서의 출사표를 냈다.
그 그림들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로서,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이력으로서 제출을 해 본거다.
해서 실험은 성공리에 이직이라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전혀 다른 분야인데 이직이 말처럼 쉬운가?
선반, 밀링, 3차원 측정기, 금속 현미경, 전기 용광로 만지다가 갑자기 그래픽질 하는 디자이너,
이거이 지금 쓱 읽는 순간처럼 누구나 다 편안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라는건 읽는 당신이 지금 이미 느끼고 있지 않는가.
필자는 그렇게 대처를 한다. 이미 일어난 상황을 피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위해 즐겼고 썼다.
잠 못 자고 며칠이 지났다는 당장에만 급급하고 연연치 않고, 나중의 나를 위한 의미상 저축이란걸
머리 잘 써서 그렇게 해내고 엔간해선 어렵다는 그런 이직을 또 아무렇지도 않게 철커덕 해냈다.
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나 자신을 믿어준다는 자체만으로 만든 기적에 가까운 행보였다.
그렇기에 또 근자 들어서 안 자고 잘 안 먹고 이러는 자체에 대해서는 '니가 또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번혈증이 나더냐. 힘들었구나, 지쳤었더냐. 그러면 밤을 울부짖던지 즐기던
그것이 다 풀릴 때까지 그냥 그러거라.' 하며 두는 것이다. 전혀 신경도 안 쓰듯 말이다.
잠좀 며칠 안 잤다고, 밥좀 일주일 안 먹었다고... 안 죽더라고 이 화상이. 그럼 된거지 뭐가 더 필요하나.
그래도 억지로 구색은 갖추자고 떡국 먹는 척은 했다. 전처럼 정성들여 누군가를 위해 별별 짓에
그 대단하다는 요리 솜씨... 자기 자신에겐 그런거 하기가 좀 구찮아야 말이다. 편하게 살고싶더라.
대충 사다놨던 사골 국물이라는거 한 봉을 뜯어, 떡 넣고 계란 풀고 참기름에 후추에 통깨에
은행알 몇 알 푹푹 우러나라 던져넣어버리고, 오래 푹 퍼지게 끓여서 억지로 내장 속엔 채워놨다.
먹었으면 된거고, 그래도 한국 사람이니 그거 먹어서 나이 먹는... 이건 한거 아니냐고 외치는 중이다.
크게 유난 떨면서 극강의 맛을 탐닉하고픈게 전혀 없다보니, 이럼 되는거다 정도 말곤
그렇게 열망하듯 자신을 볶아채지 않는 편이다. 아니 그렇게 변했다. 또한 이럴 때 걍 둬버리니
기억할 시간이 하루 중 보다 많아지니까, 어떤 보상같은 의미도 적잖이 되는 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가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내린 이 판단이 꼭 옳았다곤 할 순 없어도, 적어도 나쁘진 않았다
라고 새해 초하루의 한 짓꺼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필자는 보다 자주적인 사람이고 싶을 뿐이다.
'~카더라'에 휘둘리는 팔랑귀로 살며 늙어가긴 싫다. 그래서 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나 자신일지라도
내가 충실한 관찰자 유도자의 역할도 차근차근 해내면서 정말로 내 내면이 바라는 부분을
하나씩 되돌려주며 스스로가 채우고 싶은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소한 시작, 나쁘지 않다는거.
잠이 안 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 하나 가져다가
오늘은 포토샵 필터를 해 봐야겠구나 싶으면 이런 갖은 실험을 해 본다.
그러면 당연히 그 필터들의 기능을 아주아주 잘 활용하게도 된다.
또한 어떤 것이 가장 나아보이는가 하는 그런 것도 자연히 알게 되기도 하고.
본 사진은 가장 애정하는 필자의 사진이자, 가장 아끼는 몰모트같은,
수도 없이 마루타로 아직도 써 먹고 우려먹고 다시 쓰고 거듭 쓰는 그런 사진이다.
사진의 좌우에 마우스를 가져가면, 클릭하라는듯 손 모양으로 변할거고,
클릭을 좌켠이나 우켠에서 할 때... 다음 사진으로 넘어간다는거. 플래시 슬라이드쇼 기능이라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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