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화여고의 특별한 은사님의 추억
Sesshou's Pen/My Writings, Essay 2018. 1. 1. 21:31 |본인의 어느 글 쓰는 공간이던, 도저히 한 번이라도 소개 안 하고 넘어갈 수 없는
본 필자의 너무나도 특별하신 은사님을 소개하는 포스팅을 적을까 한다.
필자는 종로구 필운동에 역사 제법 길다는 그 명문 여고에 운 좋게 뺑뺑이로 잘도 갔던 사람이다.
1897년도가 설립 연도라면 알만하게 오래된 학교이며 국사 시간에도 오래된 전통있는 학교들을
거론할 적에, 우리 학교도 당연히 신나서 거론이 되는 뭐 학교 내부적으로 그러하다.
동문들 모두가 그 점을 자랑스러워 하니 말이다. 또한 학교 교정의 고풍스럽고도 특이한
그 오래된 건물이 보존 가치가 높다보니 서울시의 사적으로도 지정된걸로 알고있다.
우리 시절에는 그 도르래 창문 드르르륵 위로 올려 열어서 저 아래 지나가는 친구들 부르는게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면서, 문화재를 소중히 하고싶은 한국인으로서는
다소 좀 아쉽고 불안불안한 부분이 있다면, 오성과 한음의 그 이항복의 집터인가 있었는데
이항복의 붓글씨 필체를 바위 위에 그대로 조각한 것이 있었으니, 쓴 글자 그대로 이를 일컫길
'필운대' 라고 부른다. 모두의 유적이고 문화재인데 여고 속에 들어가 있으니, 관리 면에서는
솔직히 좀 마음이 그렇다. 아무리 동문이고 거기 출신이라도 냉정하게 문화 유산 보존에 대해선
필자는 그리 생각하는 바이다.
여튼 그 필운대가 있어서 그 일대의 동네 이름도 필운동이고 학교는 필운동으로 주소가 되어있다.
운 좋은건지 어쩐건지, 배화 교문 안으로 들어오면 여학교 셋이 쪼르르 나오는데,
맨 먼저 좌측으로 가면 배화여고요, 거기서 좌회전 않고 직진해서 쭉 가면 배화여전이요...
이젠 배화대학교라고 한다, 요즘엔 전문대를 따로 전문대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암튼 거기서 만약
직진이 아니라 약간 아랫길로 더 쭉, 좀 우측 치우치게 간다면 그 배화여중이 된다.
이 필운대라는건 배화여고 안에서도 신관이라고 불리는 현대식 건물 하얀거 뒤켠에 있다.
배화여고와 여중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학교의 프라이드가 강하다. 그리고 1, 2, 3, 4반으로 표기 않고
각 반마다 한자어로 딱 한 글자씩을 이름으로 쥐여주는데, 한 개 학년이 10개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중학교 30 클라스, 고등학교 30 클라스, 총 도합 60개 반을 60개의 각기 다른 외자 단어로
반의 이름을 정한 학교다. 본인은 배화여중 출신이 아니라서 해당 없다만, 배화여중 여고를 다 나온
그런 사람들은 구분을 그래서 한다. 감반, 율반, 죽반이라고 부르면 이건 여중을 말하는거고
효반 실반 혜반 등 이런 반 명칭은 여고에 있는걸 그냥 자동 환산해서 답한다. 거기다가 각 반은
명칭 중복이 발음상에서도 없다보니 진반이라고 하면 여고의 2학년 1반이다 하는, 학년과 순번도
자동으로 알아지는 이런 식이다. 필자는 여고만 해당하므로 여고 30개반만 구분 가능하다는거.
역사 깊은 여학교, 소설에도 나오는 뻔한 설정, 남자에 관심 가질 한창의 나이에 총각 선생님?
아니 계시는게 인지상정이요 기본 아닌가. 뭔가 뻔하게 웃겨 죽는 그런 설정. 그래서 그 중에서
아무리 유부남 아저씨 선생님이시라도 여중 여고 안에서만큼은 여느 연예인 못잖은 인기있는
팬덤을 구가하시는 분들이 그 중에도 꼬옥 존재한다는거, 남중 남고는 반대겠지만.
그랬던 여학교에 그 말로만 듣던 총각 선생님이 두 분이나 부임 오시면 어떨거 같은가?
광복절에 부르는 노래 가사 기억하는가? 진짜 그게 막 터져나오더라 웃기게도. ㅎㅎㅎㅎㅎㅎ
♪ 흙~~ 다시 만져보오~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이렇게 나가는거, 아주 난리들이 났었다.
이게 웬일이냐 대체 무슨 축복이냐 하고 전교가 재잘재잘하는 엄청 큰 육중한 웅성댐, 진짜다.
여중생들은 언니들만 좋겠다고 토달대고 가던데, 여고생들은 당시 난리가 나서 경사났네 이랬다.
선배들도 못 누려봤다는 그 총각 선생님이라니, 전통만 어마무시한 딸들의 교정이 화사해졌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분은 그 중의 한 분이셨고, 나머지 한 분? 현 배화여고 교장 선생님이 되셨다.
우선 우리 은사님 성함, 최재식 선생님이시고 수학 과목 담당하시는걸로 안다.
안다? 느 은사님이라며 안다? 그렇다... 이 분은 우리 학년과 인연이 되시지 못하셔서
문과나 이과나 수업 들어본 학생이 아예 없다. 지금 교장이신 오선생님은 국어2를 가르치셨는데.
특활반에서조차 마주칠 일이 없다는게 비통하지 않았겠냔 말이지. 그래도 여고다. 깨발랄한
재잘재는 소녀들의 낙원이다. 좌절이란걸 쉽게 할리가. 존재만으로도 배화여중에게 뻐길 판인데.
그래서 우리 학년들은 비록 연이 없더라도 '보거스' 선생님이라고 만화 캐릭터로 별명 붙이고
그거 말고도 또 더 많이 부른 것이 '맥케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뭔 캐릭터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필자가 그 선생님과 유독 친해진걸 안 친구들이 "보거스? 저기 가시는데?
야, 언능 느네 맥케이 선생님 따라가야지." 하고 놀리기 바빴다. 그럼 쬐려보면 바로 평정. ㅋㅋㅋㅋㅋ
왜 그렇게 유독 친한 각별한 인연이 되었느냐고? 바로 글이라는 것이 사이에 있다.
심지어 영광스럽게도 은사님께서 이름도 기억해 주시고 길에서조차 먼저 알아봐 주시고
싸이월드 하실 때도 1촌 맺어주셔서 지금도 1촌으로 남아있으며, 인스타에서도 또 역시
나 모르게 내꺼 팔로우 하셔놨던거 엊그제 보고 황송해서 필자도 냅다 팔로잉 했다.
페이스북에서도 우리 최선생님께선 필자의 소중한 이웃 중 한 분이시다.
제자인 이 녀석보다도 스승께서 먼저 챙기실만큼 유난맞게 아껴주시는 그런 사제간이다.
그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당신들은 모른다. 물론 지금은 총각 선생님도 아니시고
따님들이 장성해서 성인 되가거나 성인 직전인 그 정도로 세월은 흘렀건만, 필자의 그 분께선
젊은 오빠 포스를 전보다도 더 더 더 뿜으시면서 현재의 후배들에게도 레전드가 되셨다한다.
어떻게 알았냐고? 은사님 본인이 싸이월드때부터 직접 알려오셨어 1:1 채팅으로. ㅍㅎㅎㅎㅎㅎㅎ
"진영아, 오랜만이다. 선생님 홈피좀 와 줘. 내가 동영상 올렸거든. 얼른 봐 줘 빨리. 알았지?"
진짜 스승님같기보단 이웃집 멋진 오빠 내지는 사촌 오빠같은 은사님이시다.
우선 왜 부르신건지를 아래 동영상 처음꺼를 먼저 보시라. 이건 감탄 그 자체다. 입 떡 벌어짐.
화질이 좋지 못한건, 축제 때 대강당에서 어떤 후배님이 폰으로 촬영한거라 한다. 난리다 난리.
아니.... 무슨 허리가 저리 물 흐르듯이. 이게 말이 되는 장면인가 몇 번을 봤다. 감상문 써 달라셔서
또 은사님이시니 이걸 뭐라해야하나 한참 고민을 하고 가서 말씀 올렸다. 진짜 입이 벌어진 채로
넋 놓고 본게 맞는건, 필자는 운동 신경 요구하는건 아주 젬병이며, 특히 춤 안 되는지라
시도도 안 하지만 누가 시키면 성질 버럭 내며, 겨우 분위기 편승한다해도 꼿꼿이 선 채로
해병대 박수같은거 말곤 무릎팍도 꾸불렁대지않고 대쪽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안 하고싶다 격렬하게.
순수 혈통의 파이프 빔이던 각목이라 할만한 본인을 알기에 버럭질하며 아니하는 사람이다만
필자보다도 나이로는 당연히... 스승님이신데 대체 저 분은.... 현재 50대이시다.
필자와 띠동갑이신걸로 기억한다. 12살 위의 총각 선생님이셨는데, 그럼 지금 쉰 여덟 되신건가?
환갑 되시는게 얼마 안 남으신 분이신데, 그렇게 보이는가? 믿겨지는가? 이건 사기 캐릭터 아닐까?
거기 젊은 선생님들도 많아지신거 같은데도 아직도 춤으로는 몇 년째 탑을 유지하신다고.
수학 여행에서도, 수업 시간에도, 축제에서도.... 엄청 자주도 추시는거 같아서 미추어 버리시긋다.
제자라는 이 놈아는 스승님처럼 몸을 움직이질 몬하여 그저 버럭질로 각목임을 숨기는데 어찌 저런.
억울했다 진심으로. 다시 배화여고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수업을 듣고싶은 생각이 천 번도 넘는다.
최 선생님과 인연이 특별했던건 바로 부임 처음 하셨던 고2때였나보다. 우리는 주번 학생하고
주번 교사라는 입장으로 맨 처음 그렇게 매일 매일 신관과 본관을 잇는 구름다리 위에서
주번 조회를 한다는 명목으로 만나졌던 사람들이다. 무슨 과목이신지는 우린 관심 없었고
그저 새로 오신 총각 선생님 중 한 분이 주번 교사신데 몹시 친절하시고 자상하시고 좋다는거 말곤
일주일을 주번으로서 좀 편히 지냈다는거이 전부였더랬다.
주번 임무가 끝나던 토요일, 주번 교사로서의 임무도 우리처럼 끝나시므로 피차 마지막을 대했다.
난데없이 프린트 하얀걸 고1부터 고3까지 주번들 서른명 서 있는데 전부 나눠주시는거다.
일주일이었지만 만나서 반가웠고 잘 따라줘서 고맙고 사랑스런 너희들과 함께해서 선생님은
힘든거 몰랐다고 그러시면서 왈, 별건 아니고 그래서 이 소중한 제자들이 너무너무 이쁘길래
선생님께서 생각하신 그런 마음을 글로 적으셨다며 기념으로 간직해 달라시더라.
우린 그런 선생님을 배화여고에서 보거나 들어본 바가 없어서 토끼눈을 뜨고 서로 돌아보며
우왕좌왕 해 버렸다. 묘한 패닉에 빠진 서른명은 그렇게 선생님의 조촐한 자작시가 프린트 된
종이 하나씩 들고 일주일의 주번 임무를 해산하게 되었다.
필자의 극성, 다른 나머지 총각 선생님이신 현재의 오세훈 교장선생님께서 맡으신 특활반,
거길 40: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들어가셨나니. 문예반이다. 그림 좋아하는 놈이
미술반을 다 접어버리고 오직 총각 선생님 때문에 문예반을 사심 충만하여 지원했나니.
그래서 점차 글 쓰는거 좋아하게 되고 현재도 이러지만, 여튼 총각 선생님들 부임 후
햇살이 내리 비치는걸 느끼게 된 한 명의 여고생의 사명감은 마구 타오르기 시작했던거다.
내가 그래도 글 쓴다는 문예반인데, 그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놈인데... 하면서 중얼대더니
필자의 엉뚱함이 꽃을 피운거다. 감히 화답시를 썼다, 댓구까지 맞춰가면서. 나다웠다.
그러구서 그걸 이쁘게 적어서 - 글씨만은 굉장히 잘 쓰는 편이다. 국민학생 때 이미 어른 글씨.
거기다가 그림 재능이 있으니 손 편지처럼 꾸미는건 일도 아니고, 전교생이 부탁할 수준인데
이 열정이 거기 꽂혔으니, 자작 화답시에 찬란한 글씨와 그림으로 가득 채우는게 어땠겠나.
최상급으로 만들어내서 비닐에 한 송이 싸인 장미꽃하고, 블랙로즈 초콜렛 큰거 하나하고 해서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득달같이 일찍 등교해서 물어물어 자리를 알아낸 후에
최 선생님 책상에 뜨억... 하고 갖다놓은거다, 시와 한 송이 장미와 초콜렛을 말이다. ㅋㅋㅋ
제자들에게는 이것 저것 좋은거 보여주고싶고 늘 오빠나 형같고싶다시던 우리 선생님,
처음 충격 먹으셨단다.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듯 제자들을 바라본건데, 아니 생각지도 않은
어느 당돌한 여학생이 귀엽게도 자작 화답시를 그럴싸~~하게 적어서 꽃과 초콜렛도?
여고에서 선생님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나중에 그 때를 회고하시더라. ㅎㅎㅎ
너무 고맙고 이뻤노라고. 그래서 기억 안 할 수가 없고, 더 친해지고싶었고, 늘 잊지않고
그렇게 살고싶어서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고 하더라.
20대에 어느 날 집에 가는 버스 속에서 어떤 남자 하나가 "너... 진영이 아니니? 맞지?
혹시.... 배화...여고? 나야 나. 니가 거 왜 화답시 적어줬잖아. 선생님이야. 기억 안 나니?
나 너 찾고싶었잖아. 반갑다 야. 난 진짜 살면서 너 다신 못 만나나 너무 서운했거든.
한 번은 만나게좀 해 달라고 선생님 열심히 기도했었거든. 진짜 반갑다. 우리 진영이
참 이뻐졌네, 너 요즘 뭐 하니? 친구랑 놀다 오는거야? 이야... 이제 숙녀네, 아름답네.
참 잘 컸다. 내가 다 감사하네. 너 어디 살아?" 폭풍 질문을 바로 쏟아대셨고 제자인 필자는
돌이 되서 눈알만 굴리며 초 당황을 하고 있었다. 스승님이신데... 제가 감히 어찌...
그 생각에 그냥 새카매졌다만 선생님은 개의치도 않으셨다. "너무 딱딱하게 하지 말어.
나는 친하고 싶다니까 우리 제자들이랑."
왜 필자는 그럼 그랬는가? 집이 상상 초월하게 엄격을 넘어 존재할 수 없을 수준으로
굉장히 무서웠던 집이다. 부모께 말투가 반말은 존재해선 안 되고 바로 귀싸대기다.
그리고 부친께서 생물학자시지만 대학 강단이 싫다시며 이웃 남고에서 교편 잡으신지라
선생님들께 예의 똑바로 안 갖추면 그야말로 맞아죽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다.
그걸 들어서 아하 하실 때까지 선생님은 정말 다정하게 그러셨다. "또 보자, 알았지?
너 꼭 연락해." 하고 마구 손도 흔들어 주시고. 게다가 지나치게 내성적인 필자 본인...
난감함이 어떠했겠나. 내가 미쳤지, 왜 그딴 무모한 짓을 십대에 했을까 등등
후회 해도 이미 늦었건만, 솔직하게 푸근하고 반갑고 너무 좋았고 그러했다.
집에서 배운게 그랬기 때문에 표현이 서툴렀을 뿐, 왜 그 스승이 안 궁금했겠는가.
여기서 잠시 다른 영상을 또 한 번 만나보고 넘어가보자.
이 영상은 배화여고가 장학퀴즈에 나가게 되었다고, 응원하러 가셔서 세상에... 방송에서 하셨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저 끼를 온 천하에 널리 알리시고 방송 전파까지 타신 용감하신 분.
아......... 필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저렇게 될 수도 없거니와, 저런 춤사위는 해당이 없나니.
무슨 물 꿀렁대고 흐르는거마냥 저렇게 유연할 수 있냔 말이다 그 연세이신데.
누가 지금 이 영상을 보면서 저 춤사위가 오십대라고 맞추겠느냐고. 오십대에 무슨 저런... 하아...
정말 저런 친구같은 특별한 스승님은 아무에게나 존재하는게 아니라 생각한다. 필자는 운이 좋았다.
당시 스승께서 적으신 글의 내용은, 공부만 해야하는 입시 제도 아래의 이 아이들이 안타깝다고,
꿈을 쫓길 바랬는데 꿈보단 영단어 하나를 더 보는 너희를 보면 마음 아프다는 내용이셨고
당돌하게도 거기에 화답한 필자는, 우리는 영단어만 쫓고싶지 않았고, 그래서 영단어장을 쥐더라도
십대로서의 꿈을 가슴에서 다 놓지 않았어요 라는 답변을 드렸다. 그러니 이쁘셨겠지.
가장 안타깝게 보이던 십대들의 그 부분에대한걸 십대가 '꼭 그렇진 않거든요.' 하며 답을 드렸으니.
그렇기에 그토록 만나고싶고 생각이 자주 나던 제자라더라. 수업 한 번 안 해 봤는데도 생각이 꽤
오래도록 나셨다더라. 저 놈만은 꿈을 가졌구나 싶어서 웃어주실 수가 있으셨다더라. 이 얼마나
마음 따뜻하시고 인간적이신 분이시련가.
필자의 입장에서 저 스승과 인연을 특별히 가질 수 있던게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우리 학년을
가르치신게 아니기에, 공부 아주 드럽게 안 하는건지 못 하는 놈이라는 그 자체가 없고
아무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더라도 직업이 직업이신만치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위주로 기억하시던
아주 초 말썽이거나 그런 편이라는걸 내가 아는데, 뭐 다른 선생님들께 저 놈 공부 잘 하느냐를
물어보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선생님만은 나라는 한 명의 학생을 사람으로 편히 대해 주셨다.
공부만 잘 하는 애들만 사람이고 제자라는 식의 선생님들이 많으셨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모든 선생님이 그러시지는 않겠다마는, 어느 정도 그런 사상들은 70%는 깔린건 맞을거다.
성적부터 색안경으로 보시지 않아주신 그 마음이, 나라는 사람 하나를 제대로 봐 주셨던 그 분이
그래서 지금도 늘 필자 본인에겐 최고의 스승님이실 수 밖에 없다.
언제 한 번 학교를 찾아갔었다 몇 년 전에. 예쁜 그 언니 누구예요 하는 꼬꼬마 재잘재잘 후배님들.
선생님은 너무 좋아하시더라 정말로. 종종 놀러오라고도 해 주시더라. 그리고 여전히 나라는
사람에게 고민이 있던가 싶을 때 속상한걸 말씀드리면 기꺼이 들어주시고선 그러신다. "언제
함 나와. 밤에 보자. 이런건 소주 한 잔 해야돼. 선생님이 사 줄께. 마시고 풀자. 응? 너 풀어야
돼 그거. 그래도 오빠처럼 생각해 주고 친구처럼 생각해 주면서 이런 얘기 선생님한테 해 줘서
고마워." 아아.......... 내가 뭔 복이 있다고 이런 따뜻한 분이 특별한 은사님으로 남아주셨는지
모르겠다. 춤사위만이 멋진게 아니라, 과거엔 총각 선생님이셔서 멋졌던게 아니라, 바로 사람
자체만 봐 주시고 편안하게 해 주시며 좋게 이끌어주시며 장점을 봐 주시는 분이셔서 지금의
후배님들도 난리난게 아닐까.
2018년엔 정말 시간 내서 학교에 한 번 다시 들러보고싶다. 너무 무심했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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