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을 깨고 오랜만에 유튜브를 갔더니, 음... 사사구통님의 채널이 사라졌단 비보가 있었다.
좀 위험하긴 했다 그 분. 
워낙에 특이한 희귀 음원들을 많이 올리셨고 게다가 고화질, 마치 그 시절 녹화를
최신 장비로 떠온 방송가 사람인가싶은 
묘한 점이 많은 유튜버였다. 그러나 그 분이 남긴 영상을 다른 이들이
받아뒀다가 잘도 올리더라. 해서 지나간 포스팅 중 
그 분의 채널에서 바로 가져왔던 것들은 똑같은 다른
영상들로 대체해서 다시 나오게는 손 봐뒀지만 아쉽기는 하더라.

이 곡도 찾아보고 들어보니 하단에 그 분의 워터마크가 있는데, 고맙기는 고마워도 확실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올리면 장땡인지, 워터마크는 뭐며 왜 쓰는지의 개념은 그렇게 있어보이지가 않다만... 여튼
그 덕에 나도  이렇게 
찾던 곡을 올릴 수는 있게 되었다. 그냥 그 사실만을 감사해야 할런지는 좀 애매하지마는
언젠가 그 분이 다른 이름으로 
다시 돌아와 주셨으면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걸 신고한 사람은 누굴까? 추억을
위해 올린걸로 보이고, 무슨 수익은 아닌 
좀 그래보이는데 구독자가 많다보니 시샘했던 것일까? 하튼 한국인은
남 잘 되는 꼬라지는 못 본다는거 참 강하더라. 
나는 그런 어글리 코리안은 되지말자고 나름 생각도 하게 되는
부분이랄까.

 

필자가 보는 MBC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의 그 풋풋하던 색깔은 88년도 대상인 무한궤도 등장까지만
이라고 봤는데 
85년 여름이면 필자가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6학년 시절이다. 심지어 가을에 자동차에 받혀
하늘을 날기도 전. 
그리고 역시구나 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부분이 동의대 출신이라는 부분이었다.
과연 동의대다 싶은 노래다.

좀 멋있거나 좋거나 오래 맴돌거나 딱 그 특유의 감성이 진한 곡들을 보면 참가자가 동아대, 동의대...
넘사벽이랄까. 
당연시 되면서도 과연이구나싶은걸 당시 누구나 들으면 깊게 끄덕거릴 그 학교 출신들이 노래했으니
어린 꼬맹이가 
보기에는 나도 잘 자라서 무조건 저 언니 오빠들처럼 그 유명한 몇 몇 학교에 들어가면 저절로
그리 될 것만 같다고 
막연하게나마 꿈을 가져볼만도 했다. 요즘 감성을 가진, 요즘 곡만 아는 사람들은 이해가
잘 안 되는 감수성이 
이런 우리 세대들만의 추억꺼리라고도 적어두고싶다.

 

밤에 피는 장미... 장미 아니라도 밤 사이에 피는 꽃도 있다 사실. 아침에 약간 보이고, 이른 아침이 지난 후에는
팽압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서 입술 꼭 닫듯 봉우리를 닫는 꽃들도 많다. 대표적인게 여름에 흔한 나팔꽃
생각하면 된다. 
이 곡이 주는 느낌은 밤 사이에 강렬하게 아니 맹렬하게 봉우리가 움트는듯한 박력이 느껴진다.
아무도 안 보는 
밤이라해도 장미라는 자체가 워낙 화려한 꽃이라서 바라보기에도 처연하리만치 아름다운
그 어떤 고고한 모습? 
왜 한낮의 장미가 아닌 밤에 피는 장미를 노래했을까? 나만이 바라보는 어떤 아름다운
대상... 이것을 장미에 비견? 
당대의 가사들은 요즘같이 선정적이고 좀 유치한 가사가 아니다보니 생각할 수록
여러가지 재밌는 상상을 해 볼 
수가 있었다. '장미같은 사랑' 정열적인 사랑이라는 소리다. 밤에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을 빗댄 말인 것이다만 
가사의 내용상 화자의 상상 측에 더 실리는 쪽이고 어느 한 밤에 둘만의 뜨거웠던
것이 한 쪽에겐 원나잇처럼 
그냥 지나쳐지고 잊혀진 기억이라면 이 가사를 읊조리는 화자에겐 무한의 그리움이요,
가슴에 남겨진 그 뜨거운 
마음도 슬프게 기억된다는 식의 내용이 마이너 코드를 타고 처연히 흐른다. 하지만
장미답게 무조건 쳐질 수만은 
없기에 그걸 보완하듯한 강렬한 베이스 비트? 잘 만들어진 곡이라고 생각을 한다.
또한 재밌는 것이 이 당시의 
강변 가요제를 포함한 대학 가요제들은 노래 클라이막스 즈음에 한 줄을 보여준다.
곡 만들고 부른 참가팀들이 
생각했던 한 가지 뭔가 멋진 말을 보여준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송강' 그렇다, 송강 정철이다. 
우리가 배워온 그 유명한 시조의 한 귀절이다. 당신이 힘겹게 머리에 이고 손으로
들고 했던 그 짐을 나에게 주오, 
이렇게 노래한 송강 정철의 아련함이 묻어나오는 시조 한 구절을 뜨억하고
보여주고 있다. 왜 보여줬을까, 왜 
그 팀은 이 구절을 차용했는가? 아마도 뜨겁게 사랑하고 무심히 떠난
그 누군가에대한 원망보다는 뭔가 힘들어서 
나를 떠난거라면 그 짐을 차라리 내게 나누던 지워주던 하지
왜 그냥 혼자 걺어지고 갔느냐는 한탄같이도 들린다. 
이 때 만이 가진 이런 특징들을 찬찬히 같이 보면 아마도
세대가 다르다해도 조금은 이 시절의 노래나 감성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기가 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필자 개인만의 생각을 첨부하는 바이다. 누구에게나 밤에 피는 
장미같은 시절과 순간과 대상은 있었을거라는
연장선상에서 이 한 곡이 들려주는 감성이 약간의 위로가 되기를 
나름 희망해 보며 가져와 본다.
들르시는 분들의 일상에도 늘 행복한 일들이 가득하시길 아울러 기원해 본다.

완연한 봄색이 묻어지는 2019년 3월 초...

 


 

 

어우러기 - 밤에 피는 장미



외로운 밤엔 나 홀로 걸었네

가슴속에 피는 한 잎 떨어진
상처만이 남아있는
한 떨기 장미처럼
슬픈 내 영혼
그러나 또 낮이 되면서도
잊혀진 지난날 그리워
가슴의 뜨거운 마음도
나의 슬픈 그 장미
아하 밤에 피는 장미
나의 사랑 장미같은 사랑
돌아오지 못할 시절
한 떨기 사랑 장미같은 사랑
아하 밤에 피는 장미
나의 사랑 장미같은 사랑
돌아오지 못할 계절
한 떨기 사랑 장미같은 사랑

외로운 밤엔 나 홀로 걸었네
가슴속에 피는 한 잎 떨어진
상처만이 남아있는
한 떨기 장미처럼
슬픈 내 영혼
그러나 또 낮이 되면서도
잊혀진 지난날 그리워
가슴의 뜨거운 마음도
나의 슬픈 그 장미
아하 밤에 피는 장미
나의 사랑 장미같은 사랑
돌아오지 못할 시절
한 떨기 사랑 장미같은 사랑
아하 밤에 피는 장미
나의 사랑 장미같은 사랑
돌아오지 못할 계절
한 떨기 사랑 장미같은 사랑
아하 밤에 피는 장미
나의 사랑 장미같은 사랑
돌아오지 못할 시절
한 떨기 사랑 장미같은 사랑

장 미


 

 

 나무위키 참조

1985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밤에 피는 장미'로 금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한 3인조 혼성그룹이다.

멤버들은 당시 동의대학교 재학중인 대학생들로 김판수, 정호영의 남성멤버 2명과
남정미의 여성 멤버 이렇게 3명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밤에 피는 장미'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메인보컬인 남정미의 가창력이 상당히 뛰어났는데 여자친구유주를 연상케 하는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다. 2005년에 쇼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노래를 다시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정호영은
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어서 불참했다. 이 때 남정미의 가창력이 죽지 않아 팬들이 남정미가 혼자
솔로라도 데뷔하길 바랬다.

 

 

 

Posted by Sess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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