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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04 진상 고객의 추억 - 라면 포트

필자는 예전에 대형 유통사에 있어보았다. 제품의 종류도 식품, 소형 가전, 생필품, 작은 담요같은 것부터
그야말로 사람에게 필요한 여러가지를 많이 팔던 총 공급처의 1호 디자이너로 있었다. (라인 일러스트레이션
방 참조)
중소기업은 뻔한... 영역 구분 없이 후두룩 막두룩 업무를 해내야 할 때가 있다보니, 필자도 어느
순간에 전화를 받고
고객 응대를 곧잘 하게 되었다. 특히 소형 가전 제품에 대해서는 인케이스 디자인도 하지만,
설명서에 들어갈
그림을 그려낸다던가, 맨 먼저 샘플 제품을 받아보고 촬영한다던가 하다보니 스스로 기능
터득한 것도 많았고
아무래도 혼자만 이공계 출신이다보니 A/S팀의 다정한 과장님, 선풍기 철엔 죽도록 바쁘신걸
알다보니 도맡았다.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가 않는 재미난 분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분은 정말 전설처럼 남았다.
쓰는 취지? 심심하면 발들 닦고 주무시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 괴롭히지 마시라는거다. 고객센터가 댁들
심심할 때에 시비 걸어도 좋은 전화번호가 아니라는거. 우리와 다 똑같은 사람들이니 존중해 주십사 이거다.
가는 말이 고우면? 그렇다, 오는 말이 고울 것이고, 의도도 가는 말도 안 고왔으면? 더러 필자같은 인간하고
맞딱들여서 오지게 개망신도 당하면서 옴팡 깨질 수도 있다는거.

 

지금도 그 때 동료들과 가끔 만나서 식사 한 번 할 때에도 언제나 거론되는 통쾌하고 어처구니도 없던
그 할배 요즘 어딜 또 쑤시고 계신지 심히 궁금하다. 언제 한 번 진지하게 토론하며 무찔러드리고싶은데
기회가 없네. ㅎㅎㅎㅎㅎ 세상은 넓고 미친 사람들도 찬란하게 참 총천연색이라는걸 덧붙인다.

 


 

 

어느 따사롭던 여름 오후, 앞자리 진실장님 전화기가 울리길래 필자는 전화를 땡겨 받았다.
아차... 많이 듣던 그 남자분?
할배스런 그 여간 피곤하게 군다는, 심심하면 걸어서 업무 방해한다는
그 목소리의 할배셨다. 오늘은 또 뭐라 하는지
친절하게 꾸욱 참고 받아봅시다 하며 시작을 했다.

 

  필자 : 네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할배 : 내가 그걸 갖고 있어. 그거가 있다고!

   필자 : 어떤 물건일까요 고객님? 자세히 말씀해 주셔야 설명 가능합니다.

   할배 : 에~~~~ 내가, 이 내가 묻고싶은건, 이 물건 왜 온도가 안 올라가지?

   필자 : 어, 무슨 물건이실까요? 답변 안 해 주시면 저도 답변 못 드리구요, 
          계속 이렇게만 계시면 저희도 다른 전화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끊도록 하겠습니다.

   할배 : 거 하얗게 뽀~~~얀 색으로 라면 끓여먹는거 말이오.

   필자 : 네, 알텐바흐 미니 라면포트 말씀이신지요? 그게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할배 : 이게 왜 안 뜨겁냐고. 왜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여?

   필자 : 네, 그 모델은 간단하게 나온거라 온도 조절기가 일단 없습니다.
          그리고 온도가 안 올라간다고 하셨으면, 라면이 조리가 안 되던가요?

   할배 : 아니 내 말은...... 물은 끓어. 근데 더 왜 안 올라가느냐고.

   필자 : 물은 끓는다면 고장은 아니신듯 하신데, 질문이 대체 뭡니까?

 

슬슬.... 할배의 말 장난에 필자는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동료들은 꼬라지를 보고 입 틀어막고
웃겨 죽어가며
필자에게 손짓으로 '워~ 워~'를 시전하고 있는 상태였다. 왜냐면 유독 그 제품을 귀여워하던걸
다들 알다보니,
노상 오후 어느 즈음에 걸어서 수시로 방해해대는 늙은이라서 우리끼리도 결론을 낸건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디 가서 돈을 주고 샀을 수준은 아니고, 사은품으로 받았거나, 경로당 노인들에게 뭐 나눠줄 때 간거 같은데
말벗이 없고 심심은 하고 자기는 대단하다고 하고싶은데 어디 그럴 곳이 없어서, 노상 우리에게 걸어대면서
우쭈쮸라도 해 주고 섬겨달라는 그런 짓꺼리를 하는 그 정신병자라고 아예 내놓은 인간이었다. 그만큼 자주했고
한 두 번이 아니어서 골고루 다들 받아본 할배인지라. 그러다가 필자에게 제대로 걸려들은 것이다.
소리도 못 내면서 서로 미치게 웃다가, 어떤 동료는 주먹 불끈 쥐면서 화이팅을 해 주고... 그런 지경이었다.

 

 

 

   할배 : 아니, 이거 몇 도까지 올라가느냐고. 왜 사람말을 못 알아들어.

   필자 : 고객님, 물 몇 도씨에서 끓지요? 100도씨에서 끓거든요. 당연히 100도씨까지만 오르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용도에 맞게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할배 : 내가... 내가 좀 원래 대단한 사람이라, 이걸로 실험좀 할려고 하는데
          설명서에 그런게 없잖여. 어쯔겄어, 그래서 걸었지. 
          아가씨가 이런 기계를 좀 아시나? A/S 팀이야?

   필자 : 고객님, 제품 문의만 하시구요, 상담원 개개인을 폄하하시는건 삼가주십시오.
          그리고 물어보셔서 답변은 드립니다만, 그러시는 고객님은 기계... 잘 아십니까?
          아니, 가전 제품 아셔서 지금 이런 질문 하시는지 의심스러워서요.
          왜냐하면 저는 라이센스 소지한 엔지니어입니다. 답변 되십니까?

   할배 : 아이쿠, 어쩐지요. 죄송합니다. 제가 좀 주책이죠? 
          고객센터들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전화들 받어 요즘. 진짜를 못 만나서 말야.

   필자 : 그래도 그러시는건 아니시죠. 고장이나 정상 사용상의 문의가 아니면
          고객센터라는게 고객님들 한가한 말벗 해 드리는 곳이 아닙니다.
          다른 고객님들도 이용하셔야지, 무슨 고장 접수도 아니고. 앞으로는 어디던 하지 마시죠.

   할배 : 네네, 알겠슈 알겠슈. 내 질문만 답좀 해 주면 내가 그런 짓 안 하겠소.

 

 

뇐네가 챠암 집요하고 징그럽더라. 왜 사니 라고 한 마디 해 주고싶은걸 부들부들 참았다. 뭘 생각하며
필자는 그런걸 참아내느냐고? 내 남자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마누라던 가족이던 골좀 아플듯.
여하간에 이 노인네는 여자 목소리 들으면서 환락이라도 느끼듯 이러는데, '목소리 좋슈.'  하면서.
이 날, 망신 망신 개망신을 그 목소리가 중후하다는 고객센터의 여인네에게 처참하게 까였다는거지.
걍 답 해 줘삐고 언능 치워라 하는 손짓들이 마구 보였다. 고생한다면서 간식 놔주면서 숨 죽이고들 가고
정말로 서로 아주 큭큭거리면서 숨 죽이며 수신호로 서로 교신하며 응대했다.

 

 

   필자 : 왜 물 끓는 온도에 맞추어졌고 왜 조절 장치 따로 없는가는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건 불변의 진리인거고
          간소하게 거기에 세팅되서 101도나 더 올라갈거 같으면 열을 차단하는
          온도 센서를 그 범주로 산정한걸 넣어서 만든 제품이니까요.
          써말 센서에대해 설명 드려야할까요 고객님?
          라면은 물이 들어가야 끓죠? 그래서 라면을 끓일 물 온도까지면 되는거라
          그렇게 조절기던 더 치솟던 이게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할배 : (못 알아들어서 어버버) 아아... 진짜시구나. 엔지니어님이시네.

   필자 : 네, 그렇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다른 질문은?

   할배 : 그럼 이거 200도까진 못 올리유? 내가 실험을 해야하는데 말야.


 

 

노인네가 꼬리를 내리면서도 역시나 집요하게, 자기의 거룩함을 부각시키더라. 오글거려 죽을 뻔 했다.
뭘 얼마나 학계에 공헌할 수준의 실험을 한답시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 붙잡고 늘어지나싶어
캐보기로 하고 이공계 모드를 제대로 장착하기로 했다. 옆에서는 손짓에 웃겨 죽는 마임들이 보이며
'그르지마, 할배 죽어. 살살혀. 너님 그르지마.' 이러구서 동료들이 난리가 났다. 당시에 A/S팀 남자들도
자격증 하나 없는데, 필자 혼자서만 기사증을 둘 갖고 있으니, 그런걸 동료들도 다 알고 있어서 웃는거다.
저리 이야기 하면서 난 노인네 수준을 떠본거다. 바이메탈이나 써모미터 등 용어도 거론 안 하고서
통칭 써말 센서라고만 대충 훅 쳐 본거다. 그 정도에 파르르 떤다면 문과생보다도 못한 수준일 수 있다.

 

 

   필자 : 죄송하지만 용도에 맞게, 식품 조리에만 써 주십사 부탁드리죠.

   할배 : 하지만 말이오, 이 내가... 금속 좀 녹여야겠어서. 뭘 좀 하셔야 돼.

   필자 : 금속이라 하셨습니까? 무슨 금속을 무슨 사유로 어디에 쓰시려고 
          이 포트로 녹이시겠다느니 하시는지요? 금속 녹일 정도면 포트 외형도 녹아야죠.
          죄송하지만 고객님, 무슨 금속이신지 제가 비등점이나 융점좀 알도록
          말씀을 해 주시겠는지요? 이래뵈도 금속 녹이는 전기 용광로도 만져본지라
          들어보면 제가 답변이 바로 가능할거 같은데요, 알려주시겠습니까?

 

 

엔지니어 커밍아웃도 모자라서 하필 뇐네가 꺼낸, 금속 녹인다는걸 노상 하던 놈이라고 나왔으니
할배는 기가 막혀하며 제대로 전문가에게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고 점차 군인 말투가 되어갔다.
존경합니다요가 나오질 않나, 여자분이 대단하시느니 그러니까 기사를 따셨느니 등등 잡설 계속.
그래서 종용을 했다, 대체 뭔 금속이느냐고, 내가 니 궁금증 해결해 주겠다고 도리어 다그쳐버렸다.
이래야지만 다시는 어느 고객센터던 얕잡아보고 함부로 하지 않을거 같아서 말이지.

 

 

   필자 : 그래서 무슨 금속을 용융시키려 하시는건데요?

   할배 : 내가 말이오... 핫멜트를 녹여서 액체로 만들고싶어.

   필자 : 핫멜트라 하셨습니까 고객님? 일단 죄송하오나 금속이 아니군요.
          글루건의 심지, 제본할 때 쓰는 그 재질은 금속이 아닙니다.
          그리고 촛농과 성질이 비슷하다 보심 됩니다.
          즉 라이터던 장작불이던 그 뭘로 액상화 하셔도, 도로 금방 굳어요.
          실온에서 금새 굳는 합성 물질이지, 금속이 아니구요.
          핫멜트가 어딜 봐서 금속인겁니까? 열 전도체도 아니건만.
          그러니까, 저희 제품으로는요, 곱게 라면만 조리해서 드시고
          그리고 그런 위험한 실험, 가급적 화재의 우려가 있사오니 하지 마십쇼.
          불이라도 나면 이웃들에게 다 보상하셔야 되는데, 전문 지식 없으심 하질 마시죠.
          그냥 글루건 사다가 쓰시고, 나중에 사용하시다가 고장 나시면
          그 때나 이 번호로 제품 상태 이야기 해 주시면 고맙겠는데요.

   할배 : 네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몰라뵙고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전화 안 할께요.

 

 

그러하다, 노인네 예상대로 위대하다며 우러러 봐 주기는 커녕, 오히려 핑계처럼 둘러대면서 어흠한게
하필 진짜로 해 보고 진짜 다 아는 사람을 만나서 뽀록이 났으니,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기도 하거니와,
게다가 아는 척도 오지게 했으니 이 무슨 망발인가 했을거다. 그래서인지 그 후 이 뇐네는 안 하더라.
아는척을 하면서 무시 안 당하고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고픈 마음만 있었지, 실제 아무 것도 몰랐고
들은 풍월도 잘못된건데 섣불리 금속 녹인다고 운운하다가 용융이니 하는 말부터 얼어버리게 되면서
막말로 임자 지대로 만나서 탈탈 영혼까지 다 털린게 아닌가. 그러니 착하게들 사세요. 지나치다 싶으면
어느 날 이 노인네 못잖게 제대로 망신만 당하고 본전도 못 건질 수 있다는거.

 

고객센터는 뭐다? 고장 관련 문의시에만 이용하세요. 제발 그래라. 다들 바쁘신 분들이니 욕설도 말고
존중도 해 줘 가면서 인사는 깍듯이 하자는거. 그건 자기의 인격이거든. 사람에겐 갑질 권한이라는게 없어.
회사와 직원이던 고객과 직원이던 부모와 자식이던 연인이나 부부간이던, 갑질하려 들지말고 착하게 살자.

  

 

 

Posted by Sessh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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